1104년 별무반 창설, 북방의 위협에 맞선 고려의 결단

서기 1100년, 고려는 문종이 이룩한 태평성대의 여운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남쪽은 안정되었지만, 북쪽의 만주 벌판에서는 새로운 강자인 여진(女眞)족이 세력을 키우며 고려의 국경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고려의 군주는 제15대 왕 숙종(肅宗)이었습니다. 그는 형인 순종과 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강력한 의지로 국가적 위기에 맞섰던 군주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1100년대 초, 고려가 북방의 위협에 맞서 어떻게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새로운 군대를 창설했는지, 그 처절하고도 위대한 결단에 대한 기록입니다.
당시 여진족은 더 이상 고려가 변방의 오랑캐로 취급하던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완옌부(完顔部)를 중심으로 통합된 그들은 강력한 기병을 앞세워 고려의 국경을 끊임없이 침범하고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고려의 주력군은 보병 중심이었기에, 평야를 질풍처럼 내달리는 여진 기병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국경 지역의 백성들은 고통에 시달렸고, 고려 조정은 새로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뼈아픈 패배,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
1104년, 숙종은 마침내 여진 정벌을 명합니다. 그러나 임간(林幹)이 이끈 고려군은 여진 기병의 위력 앞에 참패하고 맙니다. 이 패배는 고려 조정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뼈아픈 실패 속에서 고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당시 패전한 군대의 장수였던 윤관(尹瓘)은 적의 강점과 아군의 약점을 냉철하게 분석했습니다. 그는 왕에게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신이 싸움에 패한 것은 저들에게는 기병이 있고 우리에게는 보병만 있어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패배에 대한 변명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군사 체계로는 더 이상 북방의 안정을 꾀할 수 없다는 통찰이었습니다. 윤관의 이 건의는 고려 군사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교과서에서는 윤관의 영웅적인 면모를 주로 다루지만, 그 이전에 그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았던 전략가였던 것입니다.
“적을 이기려면 적보다 강한 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말에 맞서려면 우리도 말을 타야 하고, 그들의 칼에 맞서려면 더 날카로운 칼을 벼려야 합니다.”
별무반, 고려의 모든 것을 건 특수부대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인 숙종은 1104년, 역사적인 부대 창설을 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별무반(別武班)’입니다. 별무반은 말 그대로 ‘특별히 조직된 부대’로, 여진 기병에 맞서기 위해 편성된 특수 군단이었습니다. 그 구성은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첫째, 신기군(神騎軍)이라 불리는 기병 중심의 부대를 두었습니다. 이는 여진족의 핵심 전력인 기병에 기병으로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둘째, 신보군(神步軍)이라는 정예 보병 부대를 두어 기병을 보조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항마군(降魔軍)’의 존재입니다. ‘마귀를 굴복시키는 군대’라는 뜻의 이 부대는 승려들로 구성된 특수부대였습니다. 이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가적 위기 앞에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음을 보여주는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귀족부터 평민, 승려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하나 되어 새로운 군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전쟁의 서막, 동북 9성을 향하여
별무반의 창설은 단순한 군대 개편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여진과의 전면전을 준비하는 국가적 프로젝트였습니다. 17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군대를 훈련시키고 무장시키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숙종은 화폐(해동통보)를 주조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개혁을 밀어붙였습니다. 비록 그는 별무반이 활약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105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강력한 의지는 아들인 예종에게 이어졌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으니,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이 위기를 넘어서리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의 결단을 기억할 것이다.”
숙종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마침내 1107년 윤관은 17만 별무반 대군을 이끌고 여진 정벌에 나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진족을 몰아내고 국경 너머에 9개의 성, 즉 ‘동북 9성’을 쌓게 됩니다. 비록 동북 9성은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2년 만에 여진에게 돌려주게 되지만, 별무반의 창설과 여진 정벌은 고려의 강한 자주 의지와 국력을 만천하에 보여준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1100년대 초 고려의 결단은 우리 역사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꾼 ‘백절불굴’ 정신의 생생한 증거로 남아있습니다.
주요 사건 시간 순서 도표
연도 | 주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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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년 | 숙종 즉위 |
1099년 | 숙종, 남경(오늘날의 서울) 건설 계획 |
1102년 | 해동통보, 삼한통보 등 화폐 주조 |
1104년 | 윤관, 여진 정벌 실패 후 별무반 창설 건의 및 조직 |
1105년 | 숙종 사망, 예종 즉위 |
1107년 | 윤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 동북 9성 축조 |
1109년 | 고려, 여진에게 동북 9성 반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