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8년 만적의 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서기 1190년, 고려의 하늘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1170년 무신정변으로 시작된 혼란은 20년이 지나며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정중부, 경대승으로 이어지던 권력은 마침내 노비 출신이라는 경악할 만한 배경을 가진 이의민(李義旼)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법과 질서는 무너지고 오직 힘이 지배하는 시대, 신분 제도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이 시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위대한 질문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천민 출신 최고 권력자의 폭정과 그 시대가 낳은 노비들의 처절한 해방 투쟁, ‘만적의 난’에 대한 기록입니다.
무신정변 이후 고려는 하극상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의민의 집권은 그 정점이었습니다. 그는 경주 지역의 소금 굽는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힘 하나만으로 군인이 되고, 정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의종을 직접 시해하는 잔혹함을 보이며 권력의 최상층까지 기어올랐습니다. 그의 집권은 기존의 모든 질서와 가치가 무너졌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아들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고 온갖 횡포를 저질렀습니다. 노비 출신이 최고 권력자가 되었지만, 그는 또 다른 압제자가 되어 더 낮은 곳의 백성들을 짓밟았습니다.
천민 출신 최고 권력자, 이의민의 시대
이의민의 시대는 역설의 시대였습니다. 가장 낮은 자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지만, 그 과정은 오직 폭력과 탐욕으로만 점철되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인 동시에, “힘만 있으면 무엇이든 된다”는 야만의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신분 제도의 굴레에 묶여 있던 노비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며 새로운 생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이의민도 노비 출신인데, 왜 우리는 평생 노비로 살아야 하는가?”
교과서에서는 이의민을 잔혹한 독재자로만 그리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당시 사회에 던진 충격과 그로 인해 촉발된 하층민의 신분 해방 의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그의 등장은 낡은 질서를 파괴했고, 그 파괴의 틈새에서 새로운 시대의 열망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힘이 곧 법이고, 칼이 곧 옥새였다. 어제의 주인이 오늘의 노비가 되고, 오늘의 노비가 내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혼돈의 시대였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으랴!”
1196년, 또 다른 무신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최충헌 역시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했고, 노비들의 삶은 여전히 비참했습니다. 바로 이때, 최충헌의 사노(私奴)였던 만적(萬積)이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합니다. 1198년, 만적은 개경 북산에 나무를 하러 온 노비들을 모아놓고 불멸의 연설을 시작합니다.
“무신정변 이래로 높은 벼슬아치 중에는 천한 노비 출신이 많았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처음부터 따로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다가 죽겠는가!” 그의 외침은 노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들은 흥국사에 모여 반란을 일으켜 최충헌을 비롯한 상전들을 모두 죽이고 노비 문서를 불태운 뒤, 스스로 새로운 주인이 되기로 결의합니다.
실패한 혁명, 그러나 꺼지지 않은 불씨
만적의 계획은 거대하고 치밀했습니다. 그러나 거사를 하루 앞두고, 율학박사 한충유의 노비였던 순정(順貞)이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 계획을 밀고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최충헌은 즉시 군사를 동원해 만적을 비롯한 주동자 100여 명을 체포했고, 그들을 모두 강물에 던져 죽이는 것으로 반란의 불씨를 꺼버렸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노비 해방 운동은 그렇게 허무하게 실패로 끝났습니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처음부터 따로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 만적
비록 만적의 난은 실패했지만, 그가 던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귀하고 천한 것이 정해져 있는가?”라는 위대한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외침은 억압받던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신분 제도의 모순을 정면으로 공격한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1190년대의 혼란은 잔혹한 독재자를 낳았지만, 동시에 그 독재의 땅을 뚫고 나온 만적이라는 위대한 사상가를 낳았습니다. 그의 실패한 혁명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되묻는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주요 사건 시간 순서 도표
연도 | 주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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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0년 | 무신정변 발발 |
1183년 | 이의민, 경대승 사후 실권 장악 |
1193년 | 김사미·효심의 난 (남부 지방 농민 봉기) |
1196년 | 최충헌, 이의민을 제거하고 집권 (최씨 무신정권 시작) |
1198년 | 만적의 난 발발 및 진압 |
1199년 | 최충헌,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 옹립 |
1202년 | 탐라(제주)의 반란 등 전국적인 민란 지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