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2년 최승로의 시무 28조, 고려라는 국가의 설계도를 그리다

982년 최승로의 시무 28조, 고려라는 국가의 설계도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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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80년, 고려는 ‘피의 군주’ 광종이 남긴 강력한 왕권의 유산과 공포 정치의 상흔을 동시에 안고 있었습니다. 광종의 아들 경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981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이가 바로 제6대 임금 성종(成宗)이었습니다. 새로운 왕의 등장은 혼란스러웠던 고려에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왕권은 강해졌지만, 국가를 운영할 체계적인 시스템과 이념은 여전히 모호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 한 명의 노련한 신하가 젊은 왕에게 나라의 미래가 담긴 청사진을 올립니다. 오늘 이야기는 고려 500년의 기틀을 마련한 성종과 그의 위대한 파트너, 최승로의 개혁 정치에 대한 기록입니다.

광종의 시대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공신과 호족을 숙청하는 ‘파괴’의 시대였다면, 성종의 시대는 그 위에 새로운 집을 짓는 ‘건설’의 시대였습니다. 성종은 똑똑하고 개혁 의지가 강한 군주였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전국의 관리들에게 현재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의견을 올리도록 명했고, 수많은 상소문이 올라왔습니다. 그중 단연 군계일학의 통찰력을 보여준 것이 바로 노학자 최승로(崔承老)가 올린 ‘시무 28조(時務二十八條)’였습니다.

시대의 설계자, 최승로와 시무 28조

최승로는 신라 6두품 가문 출신으로, 12살에 태조 왕건 앞에서 글을 읽어 칭찬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태조부터 혜종, 정종, 광종, 경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다섯 명의 왕을 섬기며 고려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살아있는 역사책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시무 28조를 통해 광종의 공과 과를 냉철하게 평가하고, 국가의 나아갈 방향으로 ‘유교(儒敎)’를 제시했습니다. 불교는 개인의 수신(修身)을 위한 종교로 존중하되,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 이념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유교 사상을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의 건의는 단순히 이념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왕이 지켜야 할 도리, 중앙과 지방의 관계, 관리 임용, 백성의 생활 안정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담고 있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이름만 스쳐 지나가는 최승로지만, 그는 사실상 고려라는 국가의 초기 시스템을 설계한 총괄 설계자(Architect)였던 셈입니다.

“정치의 근본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불필요한 행사를 줄이고, 과도한 세금을 걷지 않으며, 억울한 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다스림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12목 설치, 중앙의 통치가 지방까지 뻗어 나가다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즉시 개혁에 착수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조치가 바로 983년에 단행된 ’12목(十二牧) 설치’와 ‘지방관 파견’이었습니다. 이전까지 고려의 지방은 해당 지역의 토착 세력인 호족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중앙 정부의 명령이 지방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국가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성종은 전국의 주요 거점 12곳에 ‘목’이라는 행정 단위를 설치하고, 처음으로 중앙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했습니다.

이는 고려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지방관 파견으로, 중앙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혁명적인 조치였습니다. 파견된 지방관들은 조세를 걷고, 교육을 장려하며, 백성들의 삶을 돌보는 등 왕의 대리인으로서 지방을 직접 통치했습니다. 비로소 고려는 이름뿐인 통일 국가를 넘어, 실질적으로 전국을 통치하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개막, 유교 국가 고려

성종의 개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국립대학인 ‘국자감(國子監)’을 정비하여 유학 교육을 장려했고, 과거제를 개선하여 새로운 인재를 널리 등용했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의창(義倉)과 상평창(常平倉) 같은 구휼 제도를 마련하고, 불필요한 궁궐 공사를 중단하는 등 애민(愛民)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을 통해 고려는 호족 연합체의 성격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유교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관료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인재를 기르는 것은 국가의 백년지대계이다. 학문을 숭상하고 현명한 이를 등용해야만 나라의 근본이 바로 설 수 있다.”

980년대는 화려한 전쟁이나 극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조용한 가운데 국가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젊고 총명한 군주 성종과 경륜이 풍부한 노학자 최승로라는 이상적인 파트너십이 없었다면, 고려는 이후 거란의 침입과 같은 거대한 외부의 도전을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기에 닦아놓은 튼튼한 시스템이야말로 고려가 500년 왕조를 이어갈 수 있었던 진정한 힘이었습니다.

주요 사건 시간 순서 도표

연도주요 사건
975년광종 사망, 경종 즉위
976년경종, 전시과(田柴科) 제도 처음으로 시행
981년경종 사망, 성종 즉위
982년최승로, ‘시무 28조’를 성종에게 올림
983년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최초로 지방관 파견
992년국자감(국립대학) 정비
993년거란의 1차 침입 (서희의 외교 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