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년 무신정변, 문(文)의 칼이 무(武)의 분노를 부르다

서기 1150년, 고려의 수도 개경은 화려한 문치(文治)의 절정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제18대 왕 의종의 시대, 궁궐에서는 밤낮으로 시와 음악이 흐르는 연회가 열렸고, 문신(文臣)들은 고상한 취미를 즐기며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고려는 더할 나위 없는 태평성대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함의 그늘 아래에서는 칼과 창을 든 무신(武臣)들의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 불안한 평화가 어떻게 피의 숙청으로 이어졌는지, 고려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무신정변(武臣政變)’의 전조에 대한 기록입니다.
고려 사회는 건국 초부터 문신을 우대하고 무신을 천시하는 ‘숭문천무(崇文賤武)’ 사상이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의종 시대에 이르러 그 차별은 극에 달했습니다. 무신들은 비록 정3품 상장군과 같은 높은 벼슬에 올라도, 젊고 하급인 문신에게조차 무시당하고 모욕받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토지를 문신들이 강제로 빼앗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왕은 국정은 뒷전으로 한 채, 문신들과 어울려 보현원(普賢院)과 같은 별궁으로 놀러 다니기 바빴고, 이때마다 무신들은 왕을 호위하는 병사 역할에 더해 온갖 잡역에 동원되는 굴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무너진 균형, 하늘을 찌르던 문신의 권세
당시 문신들의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무신들을 같은 관료로 여기지 않고, 그저 자신들을 지키는 ‘울타리’나 ‘개’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대표적인 일화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권력자였던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라는 무장의 수염을 촛불로 태워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중부가 분노하여 그를 때리자, 오히려 김부식은 왕에게 청하여 정중부를 처벌하려 했습니다. 무신이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문신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던 당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차별은 제도적으로도 고착화되어 있었습니다. 군대의 최고 통수권마저도 무신이 아닌 문신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전쟁의 공을 세워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국방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이 정작 나라 안에서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붓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지, 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무인들은 그저 울타리 역할을 충실히 하면 족하다.”
보현원의 밤, 분노의 불씨가 되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는 1170년 8월, 보현원에서 열린 연회에서 터지고 맙니다. 왕과 문신들이 술에 취해 즐기던 중, 왕이 무신들에게 무술 시합인 ‘수박희(手搏戲)’를 하도록 명했습니다. 이때 대장군 이소응이 시합에 나섰다가 힘에 부쳐 달아나자, 젊은 문신 한뢰(韓賴)가 그의 뺨을 때리며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소응은 비록 대장군이었으나 계급이 한참 아래인 문신에게 공개적으로 뺨을 맞고 섬돌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왕과 문신들은 이를 보고 박장대소했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무신들의 얼굴은 분노로 굳어갔습니다.
특히 과거 수염이 태워지는 수모를 겪었던 정중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의방, 이고 등과 함께 그 자리에서 반란을 결심합니다. “문신의 관을 썼다면 개나 소도 귀히 여기면서, 무신의 갑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이 늙은 장군이 이리도 모욕을 당해야 하는가!” 이 외침은 그동안 쌓여왔던 모든 무신들의 울분이었습니다.
피의 보복, 고려 100년의 운명을 바꾸다
그날 밤, 왕이 환궁하는 길목에서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은 칼을 빼 들었습니다. 그들은 한뢰를 비롯하여 왕을 따르던 수많은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죽였습니다. 피바람은 개경의 궁궐까지 이어졌고, 권세를 누리던 문신 귀족들은 속수무책으로 스러져 갔습니다. 이들은 의종을 폐위하여 거제도로 유배 보내고, 그의 동생인 명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로써 고려는 100년간 이어지는 ‘무신정권’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오늘의 일은 오직 우리 무신들이 멸시와 천대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함이다. 문관(文冠)을 쓴 자는 서리(書吏)라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1150년대의 화려했던 평화는 결국 곪아 터진 차별과 멸시 위에 세워진 신기루에 불과했습니다. 한 사회의 힘은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1170년의 피바람은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권력의 주인이 바뀐 것을 넘어, 고려 사회의 근간을 뒤흔든 거대한 혁명이었습니다.
주요 사건 시간 순서 도표
연도 | 주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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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년 | 의종 즉위, 문신 귀족 문화 절정기 시작 |
1150년대 | 왕의 잦은 연회와 사치, 무신에 대한 차별과 수탈 심화 |
1170년 8월 | 보현원 사건 발생, 정중부·이의방 등이 무신정변 일으킴 |
1170년 9월 | 의종 폐위 및 유배, 명종 즉위, 무신정권 시대 개막 |
1173년 | 김보당의 난 (의종 복위 운동), 의종 시해 |
1174년 | 조위총의 난 (서경 유수 조위총의 반란) |
1179년 | 정중부 정권 붕괴, 경대승 집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