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0년, 원나라의 꼭두각시가 된 고려의 왕들





1330년, 원나라의 꼭두각시가 된 고려의 왕들


1330년, 원나라의 꼭두각시가 된 고려의 왕들

서기 1330년, 고려의 옥좌는 더 이상 고려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원나라 황제의 눈 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폐위되어 머나먼 이국땅으로 끌려갔고, 그 자리에는 또 다른 꼭두각시가 앉혀졌습니다. 충선왕의 개혁이 좌절된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이라는 거대한 늪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권문세족은 원의 권력을 등에 업고 나라를 좀먹었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국가의 주권이 송두리째 흔들렸던 이 암흑기, 원나라의 손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고 다시 앉혀지기를 반복해야 했던 비운의 왕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시기 고려의 정치는 오직 원나라의 수도 대도(大都)의 분위기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고려의 왕들은 즉위하기 전부터 원나라에 가서 볼모 생활을 해야 했고, 그곳에서 원의 황족들과 인맥을 쌓는 것이 왕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권문세족들은 이러한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왕자를 지지하며 원나라에 로비를 벌였습니다. 왕의 운명은 고려 백성이 아닌, 원나라 황제와 고려 출신 환관, 그리고 권문세족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왕을 갈아치우는 시대, 충숙왕과 충혜왕의 비극

이러한 혼란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제27대 왕 충숙왕(忠肅王)과 그의 아들 충혜왕(忠惠王)입니다. 충숙왕은 재위 기간 동안 무려 두 번이나 폐위와 복위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1330년, 그는 원나라에 있던 심양왕 왕고(王暠)를 지지하는 세력의 모함으로 폐위되어 원나라로 압송되었고, 그의 아들 충혜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충혜왕의 방탕함과 폭정을 빌미로 원나라는 다시 충숙왕을 복위시켰습니다. 왕위가 마치 공기놀이 돌처럼 원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비극을 보고 자란 충혜왕의 삶은 더욱 기괴했습니다. 그는 복위한 뒤, 역사에 길이 남을 폭군으로 기록됩니다. 백성의 재물을 빼앗고, 신하의 아내를 겁탈하며, 사냥과 연회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의 폭정은 단순히 개인의 인성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꼭두각시 왕이라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을 파괴하려 했던 뒤틀린 자화상과도 같았습니다. 그의 기행은 교과서에 자세히 실리지 않지만, 나라의 주권을 잃은 시대가 한 인간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왕의 옥새는 고려에 있지 않고 원나라 대도에 있었다. 오늘의 왕이 내일의 죄인이 되고, 내일의 죄인이 다시 왕이 되는 기괴한 시대였다.”

암흑 속에서 싹트는 새로운 희망

왕과 지배층이 원나라의 눈치만 살피며 권력 다툼을 벌이는 동안, 백성들의 삶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권문세족은 ‘산천으로 경계를 삼았다’고 할 정도로 거대한 농장을 불법으로 소유했고, 땅을 잃은 농민들은 노비로 전락했습니다. 남쪽 바다에서는 왜구(倭寇)가 창궐하여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무기력한 조정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고려는 안팎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새벽이 오듯, 이 절망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변화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권문세족의 횡포와 기존 질서의 모순을 비판하며,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들이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현과 같은 학자들이 원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학문을 들여왔고, 이 사상은 훗날 공민왕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하고, 더 나아가 조선 건국을 이끄는 핵심 이념이 됩니다.

“나라가 망해가니,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썩은 나무를 베어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할 때가 오고 있었다.”

1330년대는 고려 역사상 가장 치욕스럽고 암울했던 시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처절한 고통과 모순은 결국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거대한 에너지로 응축되고 있었습니다. 꼭두각시 왕들의 비극은 한 왕조의 몰락을 예고하는 서곡이었으며, 동시에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진통이기도 했습니다.

주요 사건 시간 순서 도표

연도 주요 사건
1313년 충숙왕 즉위
1321년 충숙왕, 원나라에 체류하며 정치 (요양)
1330년 충숙왕 폐위, 아들 충혜왕 즉위
1332년 충혜왕 폐위, 충숙왕 복위
1339년 충숙왕 사망, 충혜왕 복위
1343년 충혜왕, 폭정으로 인해 원나라에 체포되어 압송, 이듬해 사망
1351년 공민왕 즉위, 반원 개혁 정치 시작